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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s tagged: 엽편

귀가길에 고양이를 만나서

By joana, August 23, 2010 1:10 am

0. 길바닥에 배설물과 토사물 얼룩이 번갈아 누워 있었다. 음식점 뒷문의 조명을 타고 고함 소리, 욕지거리가 앞다투어 튀어나왔다. 그 소란과 신문지를 휘감은 노숙자들의 눈길을 피해 육교까지 가는 길은 들어설 때 각오한 것보다 항상 더 길었다. 가로등의 허리가 등 뒤로 멀리 서있는 백화점 전광판의 조명을 잘라냈다. 큰길에서는 범람하고 있는 네온사인 불빛도 여기 뒷길에서는 굶어죽은 귀신처럼 으스러졌다. 곧 노면의 구정물이 귀신의 사체를 삼켰다. 나는 그곳을 지나 집으로 돌아갔다.

바닥이 한껏 축축했다. 파르르 떨리는 정적이 귓가를 지분거렸다. 여느 저녁이었다.

주머니칼을 풀어 오른손에 감았다. 가죽줄에 매달린 쇳덩이의 흔들이 때문이었는지 고양이 한 마리가 뛰어와 엉겼다. 나는 당황했다. 그는 가르랑거리며 내 운동화끈을 물어뜯었다.

그는 골목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나는 쪼그려앉았다. 그는 고르륵 하고 목을 울렸다. 그래서 나는 왼손으로 그의 목을 긁어주었다. 고양이는 배를 드러내고 몸을 뒤틀었다. 지저분한 바닥에서 몸을 굴렸는데도 고양이의 등은 방금 빨아낸 세탁물처럼 깨끗했고 고상한 윤기를 흘렸다. 나는 그를 쓰다듬었다. 도망가지 않았다. 고양이는 내 복사뼈와 운동화에 옆구리를 비비고 애교스럽게 장난을 걸었다. "이 고양이 주인 있어요?"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언제나 자리를 지키며 소주병을 나누고 있던 홈리스들조차 문 뒤에, 그림자에, 박스 속에, 적어도 내 질문이 닿지 않는 곳에 나누어 숨은 것 같았다.

나는 순간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양이들은 외로움의 냄새를 맡으니까." 다시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동그란 회색 눈알과 마주쳤다. 해장국집의 환풍구가 싸구려 불빛을 퉤, 퉤 뱉었다. 고양이의 털가죽이 그 빛으로 반짝거렸다. "무슨 냄새가 나는데?" "글쎄 내가 좋아하는 냄새는 아니지만, 못본 척 지나가기도 어려워서." 그는 다시 목을 울렸고 나는 그의 목을 긁어주었다. "눈물 냄새?" "비교할 대상이 그런 것이니? 감상적이구나." 서투른 손놀림에 목을 맡긴 채로 그가 타일렀다. 머쓱하고 부끄러웠다.

"중요한 건 우리가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거야." "굉장하다." 그렇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그냥 그럴 수 있다 뿐이지, 딱히…." 그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눈을 내리깔고 거만하게 고르륵거림을 냈다.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다시 고개를 들고 소리쳤다. "이 고양이 주인 없나요?" 쓸모없는 일이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잠깐 내 운동화끈을 가지고 놀다가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 너한테도 그 냄새가 나더군." 고양이가 나를 어르듯이 야옹 하고 짧게 울었다. "냄새가 어색하게 풍겨서 누가 묻혀놓고 간 것 같았어…." 그는 내 다리에 코를 부볐다. 축축하고 차갑고 기분좋았다. 나는 고양이의 목을 긁던 손을 멈췄다. 고양이는 주의깊게 내 다리에 자신의 뺨과 코와 목덜미를 문질렀다. 그리고 오른손에 감아 들고 있던 목걸이 끈을 앞발로 놀렸다. 나는 그가 내게 질문하는 것을 알았다. "외롭니?"

주머니칼의 2.25인치짜리 날은 잔뜩 세워져 있었다. 칼등을 끄집어내 밀었다. 슴베가 잠겼다. 고양이의 목울대가 피를 퍼부었다. 따뜻했다. 그는 격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피가 칼과 손을 타고 바닥에 꿀꺽 떨구어졌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목뼈에 걸릴 줄 알고 기껏 힘주어 찔렀는데 관통해버렸기 때문에,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쓰레기더미 그늘로 물러섰다. 목의 검은 얼룩이 더욱 짙어진 느낌이었다. 회색 눈동자가 길게 오므라들고 나를 응시했다. "어린애구나." 그는 짖었다. "진절머리가 나. 어린애라는 것들." 그리고 그는 고양이답게 웃었다. 눈은 여전히 나를 향한 채였다. 나는 깨끗한 왼손으로 가방을 뒤져 물티슈를 꺼냈다. 다시 고양이가 있던 자리를 쳐다보니 깨진 소주병 조각이 삐죽하게 시야를 할퀴었다.

몸을 일으켰다. 천원짜리 김밥 봉지를 풀어놓고 소주를 기울이던 적갈색 피부의 사내가 비스듬히 누워 여기저기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물티슈를 두 장 더 꺼내 손바닥과 칼을 닦았다. 칼날에 남은 물기는 티셔츠를 접어 닦아냈다.

운동화에 피가 묻지 않았나 내려다봤다. 막 자리를 떠나려다 말고 길바닥에 고인 검은 피얼룩을 밟아 문질렀다. 바싹 말라붙어 있었다. 발끝에 힘을 주자 피딱지가 긁혀 떨어졌다. 나는 가방을 추키고 칼날을 접었다. 쓰레기봉투의 매듭 사이에 물티슈를 찔러넣고 허리를 폈다. 네온사인 찌꺼기가 어둠 속으로 툭툭 떨어져서 녹아 사라졌다. 돌담과 덩굴이 얽힌 철망 건너 오른편에서 전철이 왈각왈각 고함을 지르며 지나갔다. 나는 골목의 끝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집에 가려면 한참 더 걸어야 했다. 피곤했다.

1. 여자 소설가 지망생들의 글에서 고양이, 달(≒밤), 피(≒생리혈), 카페를 빼면 남는 게 없더라는 옛 농담이 생각난다. 카페를 제외한 모든 요소가 다 포함되어 있다. 도저히 눈뜨고 봐줄 수 없는 문장은 일부 고쳤다. 글 자체는 훨씬 젊었을 때의 것인데, 만연한 허세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남자는 담배하고 자위.

눈 앞의 세계

By joana, July 1, 2010 2:05 pm

눈 앞의 트레이싱지에 세계가 그려져 있다. 그림은 정교하고, 트레이싱지는 한 치의 구김도 없다. 투명한 종이가 일렁거린다. 메슥거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세계가 방 천장과, 꺼진 램프의 모습을 하고 내게 가라앉았다.

과음했다.

엄마는 고양이의 피부병을 치료하러 외출했다. 엄마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때 나는 머리로 베개를 밀면서, 블랙아웃과 잠의 틈새, 투레질하는 두통에서 달아나고 있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먼 곳의 으르렁거림같았다. 현관과 침실 사이에 넓은 폭포가 있어서, 다녀오겠노라는 말과 얼마인지 모를 시간을 깨뜨렸다. 파편을 휩쓸어갔다. 나는 물에 젖은 듯 엉망진창이 되어 몸을 일으켰다. 선배가 술자리에 나타날 줄 알았더라면 이렇게 많이 마시지 않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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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동화 읽은척하기

By joana, May 7, 2010 1:48 am

왕이 늙어서 왕위를 물려줄 때가 되자, 세 아들을 모으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양탄자를 가져온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
세 아들은 각자 의논하고 튼튼한 말 세 마리를 나눠 탔다. 그리고 나이 순서대로 출발하기로 했다.

현명한 첫째 왕자가 물러나와 제일 먼저 출발했다. 왕비가 첫째 왕자에게 황금 털실 한 뭉치, 황금 장화 한 켤레, 황금빛이 도는 갓 구워진 빵 세 덩어리를 주었다. 첫째 왕자는 말을 달려 북쪽으로 갔다.
북쪽에 시들지 않는 나무들의 숲이 있었다. 숲에 자라난 나무의 둥치는 은으로 되어 있고, 나뭇가지는 금으로 되어 있고, 잎은 보석이었다. 탐욕스럽게 숲으로 걸어들어간 사람들은 빛에 눈이 멀어 숲을 헤매다 죽었다.
숲의 입구에 이르렀을 때 첫째 왕자는 등을 구부린 할머니 한 명을 발견했다. 할머니는 뜨개바늘과 뜨다 만 편물을 들고 엉엉 울고 있었다. 첫째 왕자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우십니까?"
"손녀의 모자를 뜨고 있는데 털실이 모자랍니다."
첫째 왕자는 황금 털실을 할머니에게 주었다. 할머니는 기뻐하며 털실을 받았다.
"고마우신 분, 숲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숲의 입구에 있는 가장 굵은 나무에 털실을 둘러 묶고,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곧게 걸으면 됩니다."
"하지만 나는 털실을 할머니에게 드렸습니다."
"안타깝군요."
할머니는 종적을 감추었다. 첫째 왕자는 숲으로 걸어들어갔으나, 그 현명함도 소용없이 길을 잃고 헤매다 지쳐서 죽었다.

첫째 왕자가 돌아오지 않자, 용감한 둘째 왕자가 출발했다. 왕비가 둘째 왕자에게 황금 털실 한 뭉치, 황금 장화 한 켤레, 황금빛이 도는 갓 구워진 빵 세 덩어리를 주었다. 둘째 왕자는 말을 달려 북쪽으로 갔다.
첫째 왕자가 죽은 숲 입구에서 둘째 왕자는 발을 감싼 거지 한 명을 발견했다. 거지는 누더기를 입고 맨발로 엉엉 울고 있었다. 둘째 왕자는 거지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우십니까?"
"고향으로 돌아가 살려 하는데 신발이 없어 걷지 못하겠습니다."
둘째 왕자는 황금 장화를 거지에게 주었다. 거지는 기뻐하며 장화를 받았다.
"고마우신 분, 숲을 무사히 지나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숲의 입구에 있는 가장 굵은 나무에 털실을 둘러 묶고,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곧게 걸어서, 장화를 신고 보이지 않는 개울을 건너면 됩니다."
"하지만 나는 장화를 당신에게 주었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거지는 종적을 감추었다. 둘째 왕자는 숲으로 걸어들어가, 보이지 않는 개울 기슭에서 그 용감함도 소용없이 차가운 물에 발이 잘려 죽었다.

형들이 돌아오지 않자, 선량한 막내 왕자가 출발했다. 왕비가 막내 왕자에게 황금 털실 한 뭉치, 황금 장화 한 켤레, 황금빛이 도는 갓 구워진 빵 세 덩어리를 주었다. 막내 왕자는 말을 달려 북쪽으로 갔다.
형들이 죽은 숲 입구에서 막내 왕자는 깡마른 아이 한 명을 발견했다. 아이는 텅 빈 그릇을 끌어안고 엉엉 울고 있었다. 막내 왕자는 아이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우니?"
"배가 고픈데 먹을 것이 없습니다."
막내 왕자는 빵 한 덩어리를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기뻐하며 빵을 받았다.
"고마우신 왕자님, 양탄자를 무사히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숲의 입구에 있는 가장 굵은 나무에 털실을 둘러 묶고,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곧게 걸어서, 장화를 신고 보이지 않는 개울을 건너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양탄자를 깔고 머리 셋 달린 개가 자고 있습니다. 개가 잠을 깨면 세 개의 입에 각각 빵 한 덩어리씩을 던져주고 양탄자를 가지고 나오면 됩니다."
"하지만 나는 빵 한 덩어리를 너에게 줬는걸."
"저런."
아이는 종적을 감추었다. 막내 왕자는 숲으로 걸어들어가, 보이지 않는 개울을 건너고, 머리 셋 달린 개에게 갔다. 개가 잠을 깨자 빵 두 덩어리를 각각 던졌다. 개의 두 개의 머리가 빵을 받아 삼켰고, 나머지 머리 하나가 막내 왕자를 잡아먹었다.

그날 밤 내가 보고 들은 것

By joana, June 12, 2009 3:40 am

자정을 막 넘긴 시각이었다. 당직근무를 대신해주던 팀원에게 전화가 왔지만, 배터리가 다 되어 받지 못했다. 드문드문 비가 내렸다. 나는 우산이 없었기 때문에 바쁘게 걸었다. 핸드폰도 가능한 한 빨리 충전해야 했다. 코팅된 종이 재질의 쇼핑백을 머리 위로 뉘어 비를 가렸다. 그 안에 오늘 산 카디건이 들어 있었다. 카디건이 젖지 않기를 바랐다.

사거리의 모퉁이에 편의점이 있었다. 밝은 빛이 차도까지 드리웠다. 가로등의 누런 조명과 섞이며 편의점 안, 온장고를 들여다보는 남자를 비추었다. 가늘고 뜸한 빗발이 남자의 머리카락과 얼굴에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삼십 대 초중반의 남자로, 저녁의 과장된 조명과 대비되는 거무스름한 얼굴이었다. 흰 러닝셔츠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었다.

나는 냉큼 편의점의 차양 밑으로 들어가서, 카디건이 조금이라도 젖었는지 보려고 쇼핑백의 입을 다문 스카치테이프를 떼어냈다. 손을 재킷에 문질러 닦고 카디건을 꺼냈다.

남자는 강아지 한 마리를 안은 채였다. 굵은 팔 사이에서 희고 굽실거리는 털이 간신히 보였다. 남자는 강아지에게 눈길은 주지 않고, 어깨를 약간 굽혀서 그것을 꼭 끌어안고, 끈질기게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남자의 팔뚝과 큰 손 사이에서 가끔 개의 검은 눈이 보였다. 남자의 손짓마다 개의 이마에 난 털이 눌리며 당겨졌다. 눈꺼풀의 가죽까지 당겨졌다. 먼 거리에서도 눈 안쪽의 붉은 핏줄이 언뜻 보였다. 남자는 개의 머리를 닳아 없앨 것처럼 쓰다듬고 있었다. 나는 카디건이 젖었는지 보려고 쇼핑백을 들여다보며, 뽀드득 소리가 날 듯한 개의 머리가죽과 두개골과 당장 짓이겨지는 이마의 근육을 애써 모른척하고 쇼핑백 안의 카디건을 다시 개어 넣으며, 문득 그 남자가 온장고를 들여다보는 것을 멈추고 내 정수리와 이마를 살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개의 눈도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다음 순간에, 사실은 머리통뿐이었던 그 개의 머리가 툭 하고, 촉초근하게 젖은 보도블록으로 떨어져 내렸다. 나는 목구멍이 굳었다. 아마 숨도 멈춘 것 같았다. 침도 삼킬 수 없게 목구멍에 석고가 흘러든 것 같았다. 개의 머리가 도르륵 굴러서, 니스를 발라 반들반들하게 정착시킨 단면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조명에 둔한 윤을 내며, 그림자처럼 검은 피가 굳어 있었다. 움직이지 않은 것이 몇 초인지 알 수 없었다. 맥박이 쿵 뛰었다. 손에 주둥이를 말아 쥔 쇼핑백의 무게가 느껴졌다. 남자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목덜미에 모래주머니가 얹힌 것처럼, 고개를 어떻게 돌리거나 달아나도 모래주머니가 목을 감아서 놓치지 않듯이 그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란 것을, 모른 체할 수 없으리란 것을, 뚜렷하게 거짓말같이 깨달았다. 나는 공포에 질렸다.

도망쳤다. 비명이 나오지 않았다. 걸음마다 에나멜 구두가 발등의 뼈를 눌렀다. 비명을 질렀는데 내 목소리를 못 들을 뿐일 수도 있었다. 엄지발가락의 뼈가 삔 것 같았다. 발이 아팠다. 통증이 서둘러 발가락과 발목과 정강이와 무릎을 두들겼다. 꽉 쥔 쇼핑백의 종이 모서리가 손가락의 뿌리로 파고들었다. 남자가 슬리퍼를 끌고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 남자가 나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거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처덕처덕하는 발걸음 소리가 내 비명보다, 구두굽의 따악 따악 하는 뜀 소리보다 크게, 등 뒤편에서 불빛과 골목 전체를, 그리고 내 뒤통수를 이빨로 깨물어 씹듯이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재게 걸었다. 나는 뛰었다. 달리면서 왼쪽 주머니를 더듬어 열쇠를 끄집어냈다. 길에 면한 문 손잡이에 찔러 넣었다. 처덕처덕하는 발걸음 소리가, 남자의 그림자가, 골목 어귀의 가로등 밑에 그려지고 곧 내 방향으로 길게 누웠다. 손잡이를 돌리고 잡아당겨 문을 열었다. 이번만은 남자의 발걸음 소리보다, 자물쇠 풀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남자의 검고 둥글며 홍채가 사방으로 퍼진 눈동자가 마치 귓가까지 치달은 것처럼 느껴졌을 때, 난 문 사이로 몸을 밀어 던지고 안쪽의 손잡이를 거세게 당겼다. 판결을 내린 망치처럼, 쾅 소리가 났다. 슬리퍼 밑창이 길바닥을 다급히 때렸고, 그 소리가 몇 번 더 가까워져서 문 앞에 멈췄다.

그리고 조용했다. 나는 뺨이 축축해진 것을 깨달았다. 내가 숨을 가쁘게 쉬는 것을 깨달았다. 쇼핑백이 구겨지도록 쥐어서 손가락 마디가 뻐근해진 것을 깨달았다. 가느다란 빗발이 문 위에 덮은 슬레이트를 두들겼다. 발이 엄청나게 아프기 시작했다.

귀를 기울였다.

빗소리가 약간 바빠졌다.

문 저편은 조용했다. 묵직한 쇠로 된 문이 투명한 것처럼, 나는 문 앞을 떠나지 않은 남자를, 느꼈다. 단지 빗소리가 급해졌다.

쇠를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발의 통증으로 미칠듯한 기분이 되었다. 문 손잡이가 움칫거리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단지 처덕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듣고 싶었다. 젖은 길바닥에서 돌과 유리 조각을 튀기면서 멀리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소리가 듣고 싶었다. 잠금장치의 빗장이 맞부딪쳤다. 덜걱 소리가 났다.

문의 둥근 손잡이가 까딱이는 것을 멈췄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비가, 거대한 정적 위에서 약하게 튀겼다. 무의식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호흡을 멈췄는데 모르고 있었다. 미간에서부터 현기증이 번졌다. 괴괴한 쇠그물이 나와 문과 손잡이를 엮고 꼼짝할 수 없게 만들었다.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주저앉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묵이 두껍게 나를 감싸고 지탱하며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주저앉지 못해서 다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오래 기다려야 했다. 탁, 찰싹, 처덕, 처덕, 하고 발걸음 소리가 들려서 귓바퀴를 길고 끈끈하게 잡아당겼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메아리처럼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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