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2008/11/05 01:57
#1. 깊은 우물에 걸린 두레박처럼 졸린다. 느슨하게 꺼떡이며 고개를 떨구니 검은 물이 잠잠히, 검은 물이 겹쳐 있고 등골이 서늘하다. 뭄을 이룬 나무판자가 젖어서 부풀었다 마르며 휘어지고 터질 때, 쪼개져 나간 부스러기에 검은 물이 산산스럽게 물러서 몸을 일으켰다 가라앉는다.
예전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無에 대해서 사색하는 능력은 인간만 가지고 있다. 형이상학은 일관적으로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라고 생각하며 수강했지만 저 간명한 정의엔 반하고 말았다. 인간이 아니고서야, 인간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 괴롭고 우스운 삶을!
#2. <입시명문사립정글고등학교> 239화 <수능맞이이사장훈화>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15640&no=244
본편에 개그를 빼더니 유저 댓글로 웃기기를 시도하는 프로그레시브 인터랙션 카툰. -_-;;;
#3. 추석때 찍은 사진. 자랑샷 찰칵

드디어 가족 숙원이던 서재를 마련했다. 그간 책들은 사람 손길보다 쥐떼의 습격을 더 많이 받았다. 왼쪽 벽의 책장은 두 겹이고, 아버지 책은 반대편 벽에 있다. 내 책은 기껏해야 다섯 칸 정도다.
어머니가 독서가인 것에 반해 나는 그렇지 않다. 전집류의 98%는 읽지 않았다. -_- 나머지의 절반은 꺼내지도 않았다. 사실 내겐 잘 정리된 땔감으로 보일 뿐이지만 이렇게 말하면 부모님이 서글퍼하시겠지!
서재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센스있게 깔아놓은 이부자리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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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2008/06/15 00:50
(우리가 사는 땅이 끝나면 검은 물이 끝을 덮고 있다. 아래로 물이 마르는 바닥에 악마가 살며 위로 구름이 희어지는 천장에 신이 산다. 끝인 물의 끝난 곳에 잊혀진 자들이 산다)
침울한 네 번째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잊혀진 자들의 땅 어디에 있다. 왕은 모래 한 줌만 가지고도 나라를 잘 돌보았다. 모래 한 줌을 넘겨 다스릴 백성도 없었다.
그리고 정원이 있었다. 정원은 네 번째 왕의 자랑이며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왕의 유물이었다. 왕이 돌보는 모래 한 줌도 이 정원의 것이었다. 왕은 정원에 소홀하지 않았다. 그는 손수 정원사를 채용했다. 정원사는 멀지 않은 곳에서 왔노라고 했다. 정원사의 모자는 너무 커서 챙의 가장자리가 국경까지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라가 전부 어두워졌다. 이끼와 덩굴풀이 서로 기대며 자라났다. 심술궂은 정원사는 넝쿨이 손님의 발목을 잡아 넘어뜨리도록 가꾸었다. 왕도 웃자란 풀에 곧잘 발이 걸렸다. 어느 날 완전히 넘어지고 말아, 일어나며 손으로 바닥을 긁었다. 왕은 서서 쥔 것을 풀었다. 모래가 어둠에 젖어 검게 흘러내렸다. 흙 가운데 몸이 둥글고 축축한 벌레가 있어, 양껏 몸부림치며 왕의 손목을 감았다. 왕은 놀라서 펄쩍 뛰었다. 그바람에 왕관이 벗겨졌다. 함께 정원사의 모자도 벗겨졌다.
풍요롭던 진흙이 햇빛 아래 드러나고, 부정한 풀이 정히 말라 죽었다. 왕의 정원은 고운 모래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다섯 번째 왕이 네 번째 왕의 기억을 잊었다. 그 역시 모래 한 줌을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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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2008/04/27 21:36
승객이 아무도 없다. 안내방송이 나오고 문이 여닫혀도 타는 사람이 없다. 나는 짐칸에 놓인 무가지를 끄집어내린다. 누군가 풀다 남긴 스도쿠에 답을 단다. 그리고 한참 지나서야, 눈먼 개 한 마리가 차에 오른다. 그는 오른쪽 뒷다리를 절름거리고 있다.
개는 걸어서 내 맞은편에 코를 들이밀더니 성큼 뛰어서 엎드린다. 긴 꼬리가, 좌석을 버드나무 가지처럼 찰삭 때린다. 빨간 비로도 표면에 꿀 빛깔 털을 팽개치고 개는 앞발을 모은다. 대가리를 뉘어 포갠다. 그 위로 쫑긋하였던 귀가 저를 쓰다듬듯이 가라앉는다. 나는 무가지를 조금 내려 누운 개를 보고 있다. 지하철은 다음 정거장을 향해 느리게 가속한다.
절걱절걱대는 차체의 진동을 빼면 전부 조용하다. 그리고 소근거리듯 하는 숨소리와 바퀴가 레일을 튕기는 리듬에 맞춰서, 쌉싸름한 풀의 냄새와 하얗고 작은 꽃들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개와 나를 쓰다듬고 지나간다. 팔뚝의 솜털이 주뼛하다. 그것이 나긋이 기울어지는 세모꼴 손잡이와 같은 방향으로 곤두선다. 나는 스도쿠를 잊고 무가지를 반으로 접어 무릎에 내려놓는다.
개는 간혹 하품을 하고 뒷다리를 바쁘게 움직여 배를 긁는다. 지하철은 다음과 다음 역을 훨씬 지나쳤지만 다시 타는 사람이 없다. 나는 저 개가 과연 표를 끊었을까 궁금해한다. 그의 맞은편 좌석에 오래 앉아 있다. 그래서 이 차량 안의 승객은 나와 눈먼 개 둘이었는데, 이제 내리는 사람도 없으며 우리는 함께 영원히라도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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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2008/04/17 19:40
짜증이 늘고 몸에 피곤이 뱄다. 늙은 기린처럼 목을 기울이고, 단편적인 숨을 쉬다가 잠든다. 아침마다 마지못해 일어나 회사에 온다. 체력을 늘리려던 계획이 게으름과 일과 조급증에 떠밀렸다. 허겁지겁 책을 읽는다. 꿉꿉한 속을 달랠 수 없다.
#1. 교정과의 내 담당 의사는 30대가 안 되었을 것 같은 젊은 여자다. 젊다기보다 어리다는 표현이 어울릴 동안에, 목소리도 아기자기하니 귀여운 편이어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치료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입 안에서 새끼용이 난리치는 듯한 소리를 듣고 있는데, 의사의 뒷편으로 누가 쪼르르 오더니 뭔가를 부탁했다.
"오늘 수업인데, 이것 좀 번역해 줘요."
"나 영어 못해요. 김선생님이 영어 잘해."
"에이 김선생님 바쁘대."
"나도 바빠요. 나도 괴로워. 나 지금 진심으로 누워있는 제3대구치에 필링 하고 있다고 TㅇT"
"미안요"가 목구멍까지 나오다가 되돌아가고, 웃다가 혀에 코팅할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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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2008/04/12 22:35
교복 차림의 여학생이다. 전학을 오느라 하숙을 얻었다. 그곳은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복도의 양 옆은 시멘트가 덜 마른 벽으로 칸칸이 나뉜 채다. 마련된 것이 없어 복도에만 백열등이 달려 있다. 줄지어 선 정사각형의 방마다 복도의 조명이 내리닫는다. 그것이 벽의 어둠에 짓눌려 세모꼴로 압축되어 있다. 계약한 방은 벽과 문과 손잡이가 있다. 둥근 놋쇠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 집주인을 만났다. 그는 거칠게 말하고 몸짓이 과장되며, 체구는 작고 팔이 두껍고 얼굴이 다소 검다. 녹색 계열의 지저분한 셔츠를 입고 나를 올려다본다. 방에는 아직 가구가 없다.
나는 모두 알고 있었다. 나는 여고생이고, 통속적인 공포소설의 첫 등장인물이자 첫 희생자였고, 첫 장의 묘사대로 복도와 방과 곧 나를 살해할 인물을 만났다. 다음은 학교에 가는 일이었다. 학교에 간다. 친구와 수다를 떤다. 그녀는 소식이 없는 나를 찾으러 왔다가 두 번째 희생자가 되었다. 나는 전부 알고 있어서 내가 살해당한다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다는 것도 안다. 내가 아는 한에서, 나는 아직 두렵지 않다.
그리고 하숙으로 돌아갔다.
집주인은 녹슨 쇠막대를 들고 나를 쫓는다. 나는 복도를 따라 건물의 깊은 곳까지 달아나고, 예고된 대로 공포에 질렸다. 물탱크도 설치되지 않은 지붕으로 쫓겨 뛰면서 필사적으로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이 첫 번째 도망에서 죽지 않았다. 나는 잽싸게 빈틈을 찾고 잘 빠져나갈 수 있었다. 나는 알고 있다. 지붕의 끝자락에 몰리자 빈틈을 찾으며 뒷걸음질친다. 무신경한 얼굴의 남자가 다가온다. 절망하는 내 앞에서 그가 무거운 쇠막대를 바로잡았다.
지붕의 가장자리를 더러운 고양이 한 마리가 달려서 도망가자 나는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도망쳐 가는 묘사는 고양이에 대한 것이었다. 첫 희생자는, 나는, 여기서 분명히 비참하고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그리고 한 치 다름없이, 바로 그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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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2008/04/08 13:00
딜러가 카드를 나누어 준다. 사람들은 받은 카드를 품에 넣고 덱을 잠근다. 카드는 거의 무한하고, 제각기 다른 말이 씌어 있다.
[민주적인 것은 좋은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며, 사회는 다수의 이익을 추구한다]
[사회적 약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사형은 존속되어서는 안된다]
[난 짬뽕]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
...든가, 이런저런 말들이 우루루 씌어 있다. 사람들은 자기 차례가 되면 카드를 낸다. 간단한 문제에서는 한두 장만 내도 되지만, 누군가 요구하면 더 낸다. 영리하고 올바른 사람들이 스트레이트 플러쉬나 풀하우스 정도를 내고, 아무리 띨빡한 사람이라도 원 페어 정도는 낸다.
그런데 천사가 나팔을 불자, 어떤 사람이 불붙은 별처럼 나타나 졸라 두꺼운 카드를 테이블에 던져서 다른 모든 카드를 뒤집어 버렸다. 테이블은 카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반으로 쪼개지고, 다른 카드와 카드에 매달려 있던 사람들은 운하에 빨려들듯 테이블 틈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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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2008/03/30 00:16
백 걸음 바깥에 나라가 하나 있었다. 조약돌처럼 반짝이는 머리채를 가진 공주가 다스리는 나라였다. 사람이 짐승과 어울려 살았다. 큰 비가 내렸다. 사람과 짐승의 눈과 귀가 멀었다. 짐승은 서로 부딪히다가 이를 드러내고 물어뜯으며 곧 모두 죽었다. 사람은 허리를 숙이고 겁내어 걸었다. 그러다 땅을 더듬으니, 썩은 고기를 옮기느라 바쁜 개미 떼가 있었다. 사람은 그것을 본받았다. 입을 맞추며 인사하여 평화로움을 선언하고, 두 손을 더듬이삼아 천 가지 말을 만들었다. 그래서 사람은 길게 살았다.
오랜 후에 큰 바람이 불었다. 살아남은 사람에게 병이 돌았다. 병이 입술을 타고 땅과 하늘을 뛰어다니며 사람을 잠재웠다. 잠든 사람은 숲을 한바퀴 돌아온 바람에 흐드러져서 날아갔다. 모든 사람이 잠들었다. 모든 사람이 먼지가 되었다. 공주도 눕고 곧 숨을 넘겼다. 바람은 다시 숲으로 쉬러 갔다.
사실 한 명은 남았다. 우연히 왼 눈을 보존했으되 입술이 없어 쫓겨난 문둥이였다. 문둥이는 숲 가장자리의 거적을 헤치고 나와, 먼지 쌓인 흙을 요밀히 밟고 잠든 사람이 있는 땅까지 갔다. 문둥이는 먼지 쌓인 거울과 녹슨 고기칼을 구했다. 옷맵시를 고치고, 제 혀를 베어서 아래웃니를 덮었다. 석회같은 빛깔의 머리채를 늘어뜨린 공주가 곱게 누운 향소의 단이었다. 문둥이는 머리와 어깨와 달뜬 심장을 돋워서 인사를 했다. 감히 공주의 발치에 누웠다. 잠이 들었다. 그래서 남았던 한 명도 목숨을 놓고, 마침내 모두 평화로워졌다.
자, 이제 백 걸음 바깥에는 아무런 나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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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2008/03/08 22:04
눈 사이가 유별나게 먼 것을 빼면 유별날 것 없는 보통 소년이었다. 저 생긴 것에 관심이 많을 나이였으나, 미간척은 태연했다. 그는 다른 것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왕의 목을 베고자 했다. 똑같이 눈 사이가 멀었던 네 아비가 억울히 죽었다, 왕의 짓이다, 네가 아비의 복수를 하여라 하는 어미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소하고 재미있는 일에 관심 가질 틈 없이 내처 자라버린 미간척으로서도 억울할 일이겠으나, 젊음을 홀로 치러낸 어미는 독기로 눈이 멀었다.
그래서 미간척은 열 다섯 살에 투명한 검을 등에 지고 길을 떠났다. 그 검이야말로 아버지가 죽음을 각오하고 두드려 낸 물건이었다. 어미는 삯바느질로 모은 노자를 쥐어 주고 미리 목숨을 끊었다. 몇 벌 없는 옷과 식량을 챙겨 비끄러매고,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뒤로 하였다. 길이 거칠고 좁았으나 그는 젊어서 너울너울 걸어갔다. 이슬 젖은 잠도 잘 잤고, 마른 떡도 잘 먹었다.
몇 밤째인가 자고 깨어나 이마의 이슬을 터는데, 험한 인상의 선비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선비는 미간척에게 어디로 가느냐 묻고, 등의 검집을 눈여겨 보았다. 혹시 왕을 죽이러 가느냐, 내가 눈 사이가 먼 아이의 소문을 들었더라 하고, 미간척이 어색하게 부정하자 허허 웃었다. 선비는 큰 걸음으로 미간척을 따르더니, 그를 돕겠다고 제안했다.
왕 앞에 나서자 선비는 공손히 절하고 큰 솥에 물을 채워 달라 하였다. 솥을 꺼내자 불을 활활 피우고 물을 끓였다. 선비와 미간척은 검을 들고 춤을 추었다. 선비의 춤이 대단하여 사람들은 넋을 잃고 보았다. 미간척은 좀 모자란 솜씨로 선비를 따라 덩실대었는데, 선비가 솥의 모서리를 따라 돌며 미간척의 머리를 잘라 솥에 빠뜨렸다. 왕과 신하가 웅성거리는 동안 선비가 하릴없이 춤을 추고, 잘 삶긴 미간척의 머리가 둥실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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