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3번 승강장 2번 출입구

text 2008/04/27 21:36
승객이 아무도 없다. 안내방송이 나오고 문이 여닫혀도 타는 사람이 없다. 나는 짐칸에 놓인 무가지를 끄집어내린다. 누군가 풀다 남긴 스도쿠에 답을 단다. 그리고 한참 지나서야, 눈먼 개 한 마리가 차에 오른다. 그는 오른쪽 뒷다리를 절름거리고 있다.
개는 걸어서 내 맞은편에 코를 들이밀더니 성큼 뛰어서 엎드린다. 긴 꼬리가, 좌석을 버드나무 가지처럼 찰삭 때린다. 빨간 비로도 표면에 꿀 빛깔 털을 팽개치고 개는 앞발을 모은다. 대가리를 뉘어 포갠다. 그 위로 쫑긋하였던 귀가 저를 쓰다듬듯이 가라앉는다. 나는 무가지를 조금 내려 누운 개를 보고 있다. 지하철은 다음 정거장을 향해 느리게 가속한다.
절걱절걱대는 차체의 진동을 빼면 전부 조용하다. 그리고 소근거리듯 하는 숨소리와 바퀴가 레일을 튕기는 리듬에 맞춰서, 쌉싸름한 풀의 냄새와 하얗고 작은 꽃들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개와 나를 쓰다듬고 지나간다. 팔뚝의 솜털이 주뼛하다. 그것이 나긋이 기울어지는 세모꼴 손잡이와 같은 방향으로 곤두선다. 나는 스도쿠를 잊고 무가지를 반으로 접어 무릎에 내려놓는다.
개는 간혹 하품을 하고 뒷다리를 바쁘게 움직여 배를 긁는다. 지하철은 다음과 다음 역을 훨씬 지나쳤지만 다시 타는 사람이 없다. 나는 저 개가 과연 표를 끊었을까 궁금해한다. 그의 맞은편 좌석에 오래 앉아 있다. 그래서 이 차량 안의 승객은 나와 눈먼 개 둘이었는데, 이제 내리는 사람도 없으며 우리는 함께 영원히라도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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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elopment

log 2008/04/23 15:19

(a)님의 말(오후 1:33):
- 어차피 여기다가 땅 팔거 지금 좀 파두면 좋잖아?
= 여기다 파는건지 아니면 더 왼쪽인지 도면이 나와봐야 알아서 지금은 못파요
- 아 그건 도면 나오면 좀 왼쪽에 파고 오른쪽 메꾸면 되는거고
- 지금 못팔이유가 뭐가 있어

h.님의 말(오후 1:33):
-0-

(a)님의 말(오후 1:34):
= 그러니까 지금 파버리면... 다른 할일도 있는데
(입싸움 십분)
= 아 예 그냥 그러죠 뭐

h.님의 말(오후 1:34):
ㄷㄷㄷ

(a)님의 말(오후 1:34):
(땅 판다)

h.님의 말(오후 1:34):
결론,,,
후,,;;

(a)님의 말(오후 1:34):
= 어후 이제 벽돌 옮겨야지
(파놓은 곳에 걸려 넘어짐)

h.님의 말(오후 1:34):
-0-;;

(a)님의 말(오후 1:35):
여기까지만 썼는데 벌써 대하소설 같군요...

h.님의 말(오후 1:35):
그러네요
대단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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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 a

text 2008/04/17 19:40
짜증이 늘고 몸에 피곤이 뱄다. 늙은 기린처럼 목을 기울이고, 단편적인 숨을 쉬다가 잠든다. 아침마다 마지못해 일어나 회사에 온다. 체력을 늘리려던 계획이 게으름과 일과 조급증에 떠밀렸다. 허겁지겁 책을 읽는다. 꿉꿉한 속을 달랠 수 없다.

#1. 교정과의 내 담당 의사는 30대가 안 되었을 것 같은 젊은 여자다. 젊다기보다 어리다는 표현이 어울릴 동안에, 목소리도 아기자기하니 귀여운 편이어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치료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입 안에서 새끼용이 난리치는 듯한 소리를 듣고 있는데, 의사의 뒷편으로 누가 쪼르르 오더니 뭔가를 부탁했다.
"오늘 수업인데, 이것 좀 번역해 줘요."
"나 영어 못해요. 김선생님이 영어 잘해."
"에이 김선생님 바쁘대."
"나도 바빠요. 나도 괴로워. 나 지금 진심으로 누워있는 제3대구치에 필링 하고 있다고 TㅇT"
"미안요"가 목구멍까지 나오다가 되돌아가고, 웃다가 혀에 코팅할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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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1

text 2008/04/12 22:35
교복 차림의 여학생이다. 전학을 오느라 하숙을 얻었다. 그곳은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복도의 양 옆은 시멘트가 덜 마른 벽으로 칸칸이 나뉜 채다. 마련된 것이 없어 복도에만 백열등이 달려 있다. 줄지어 선 정사각형의 방마다 복도의 조명이 내리닫는다. 그것이 벽의 어둠에 짓눌려 세모꼴로 압축되어 있다. 계약한 방은 벽과 문과 손잡이가 있다. 둥근 놋쇠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 집주인을 만났다. 그는 거칠게 말하고 몸짓이 과장되며, 체구는 작고 팔이 두껍고 얼굴이 다소 검다. 녹색 계열의 지저분한 셔츠를 입고 나를 올려다본다. 방에는 아직 가구가 없다.
나는 모두 알고 있었다. 나는 여고생이고, 통속적인 공포소설의 첫 등장인물이자 첫 희생자였고, 첫 장의 묘사대로 복도와 방과 곧 나를 살해할 인물을 만났다. 다음은 학교에 가는 일이었다. 학교에 간다. 친구와 수다를 떤다. 그녀는 소식이 없는 나를 찾으러 왔다가 두 번째 희생자가 되었다. 나는 전부 알고 있어서 내가 살해당한다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다는 것도 안다. 내가 아는 한에서, 나는 아직 두렵지 않다.
그리고 하숙으로 돌아갔다.
집주인은 녹슨 쇠막대를 들고 나를 쫓는다. 나는 복도를 따라 건물의 깊은 곳까지 달아나고, 예고된 대로 공포에 질렸다. 물탱크도 설치되지 않은 지붕으로 쫓겨 뛰면서 필사적으로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이 첫 번째 도망에서 죽지 않았다. 나는 잽싸게 빈틈을 찾고 잘 빠져나갈 수 있었다. 나는 알고 있다. 지붕의 끝자락에 몰리자 빈틈을 찾으며 뒷걸음질친다. 무신경한 얼굴의 남자가 다가온다. 절망하는 내 앞에서 그가 무거운 쇠막대를 바로잡았다.
지붕의 가장자리를 더러운 고양이 한 마리가 달려서 도망가자 나는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도망쳐 가는 묘사는 고양이에 대한 것이었다. 첫 희생자는, 나는, 여기서 분명히 비참하고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그리고 한 치 다름없이, 바로 그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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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게임

text 2008/04/08 13:00
딜러가 카드를 나누어 준다. 사람들은 받은 카드를 품에 넣고 덱을 잠근다. 카드는 거의 무한하고, 제각기 다른 말이 씌어 있다.
[민주적인 것은 좋은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며, 사회는 다수의 이익을 추구한다]
[사회적 약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사형은 존속되어서는 안된다]
[난 짬뽕]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
...든가, 이런저런 말들이 우루루 씌어 있다. 사람들은 자기 차례가 되면 카드를 낸다. 간단한 문제에서는 한두 장만 내도 되지만, 누군가 요구하면 더 낸다. 영리하고 올바른 사람들이 스트레이트 플러쉬나 풀하우스 정도를 내고, 아무리 띨빡한 사람이라도 원 페어 정도는 낸다.
그런데 천사가 나팔을 불자, 어떤 사람이 불붙은 별처럼 나타나 졸라 두꺼운 카드를 테이블에 던져서 다른 모든 카드를 뒤집어 버렸다. 테이블은 카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반으로 쪼개지고, 다른 카드와 카드에 매달려 있던 사람들은 운하에 빨려들듯 테이블 틈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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